2015년 7월 14일 화요일

07.14.화요일.낮예배.장미영목사님

2015.07.14.화요일.낮예배.장미영목사님.

♪찬송가 213장 먹보다도 더 검은

* 본문 : 왕상 15장

★타락의 끝은 [동성연애]입니다

-도덕적 타락, 윤리적 타락, 어마어마한 타락 끝에 오는 것이 [남색! 동성연애!]입니다. 구약시대에도 그랬고, 신약때도 그랬고 어디에서나 타락의 끝은 [동성연애] 였습니다

-아사 때에도 동성연애, 남색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아사같은 경우에는 동성연애자들을 다 내쫓아버렸습니다.

EX) 어느 날 지나가다가 코메디 프로를 보았습니다. 남자들끼리 둘이 붙어서 하는 것인데 자세히 보니 프로가 이상 한 것같은 것입니다. 분명히 코메디 프로라고 하는데, 남자두명이 말끔하게 생긴 남자 둘이서 붙어서 “자기야 자기야”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원에서 그러고 있으면 아빠와 아들이왔다가 그모습을 보면 아빠는 아들의 눈을 가리려고 그러고 그러면 걔네들은 얼굴 뜨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동성연애가 벌써 아이들이 보는 코미디 프로에 들어왔습니다. 자연스럽게 동성연애가 스며들고 있습니다.

★동성연애가 합법화 되면!

-지금 동성연애를 허락해주고 동성들끼리 결혼하는 것을 봐주고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하나님이 일단 금하신 것인데다가 또하나는 인위적인 자기들이 인류에 인간탄생을 막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생명이 탄생하지 않게 만들겠다. 하나님이 때가 되면 알아서 종말 시키시고 알아서 다 종결시키실 것인데, 자기들의 힘으로 이세상의 모든 인류를 끝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다 남자들끼리 살고, 여자들은 다 여자들끼리 살고, 그래서 2세들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남녀의 사랑을 반대로 뒤집는 것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정격 도전입니다. 이런 것들이 어제 오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시대마다 몸으로 타락하고 돈좋아하고, 권력 좋아하고 이렇게 하다가 막판에 가서는 남자끼리 사랑하고, 여자끼리 사랑하고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안에서도 길거리에서 남자들끼리 엉덩이를 부딪히면 이상하지만 앞으로 그게 자연스러워질 것입니다. 조금 만 더 잇으면 이제 동성연애를 핍박하는 설교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지난번엔 차별금지법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많은 분들이 투표를 하고, 서명운동해서 잠깐 패스를 한거지 그것은 반드시 오게 되어잇습니다

-그런게 와야 목사님들이 끌려가게 되고, 잡혀가게되고, 약하게는 벌금에서 나중에는 파직 당하게 됩니다. 나라에 공권력의 의해서 목사님들이 설교를 못하는 때가 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찬양과 말씀이 사라지게 되는 그런 코스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동성연애까지 왔으니까 정말 빠르게 온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동성연애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걔네들이 신고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라에서도 허락을 했는데 합법인데 왜 니들이 합법화 된 것을 위헌도 아닌데 헌법소에서 남자끼리 사랑! 여자끼리 사랑을 허락했는데 니들이 뭔데 반대야.” 단체면 단체! 목사면 목사!에 대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고발하고 고소하고, 고소고발 사건이 끊이지 않다보면, 돈 없는 목사님들은 그런 설교를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정말 가진게 많아서 벌금도 다 물어주고, 매집이 좋아서 매도 맞고 감옥에서 10년, 20년 살면서도 끝까지 “그건 안된다 이놈들아” 할 수 있는 분들은 하실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하지 않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는 “그걸 꼭 말로 해야알아?” 또는 “우리라도 그러지말자.” 내지는 “그런 애들하고 놀지 말자.” 이정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입니다

★남색하는 자!동성연애자들을 쫓아낸 아사!

-그런데 이 아사때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사왕은 그들을 발도 못 붙이게 다 내쫓아버렸습니다. 아사가 있는 예루살렘 지역에 남쪽 유다땅을 거닐지 못하도록 내쫓아버렸으니까 그들이 악한 성향을 가지고 그 밑에 소돔 땅도 남색하는 사람들이 사는 데니까 그리로 갔던지, 아니면 북왕국 이스라엘로 갔던지, 사방 어디로 흩어졌든지, 또는 아닌척을 하면서 몰래몰래 사랑을 나눴던지, 하여튼 아사는 그런 자들을 쫓아내고, 아사 눈에는 이런 자들을 없게끔 만들었습니다.

★아사 왕이 행한 선한 일!

-아사같은 경우는 도덕적, 윤리적 타락의 끝인 동성연애를 멈추게 했고, 내쫓았고 (왕상 15장 12절), 종교적인 타락에 있어서 아세라 목상 찍고, 바알 주상 깨뜨리고, 자기의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 우상숭배 한다고 태후에 위에 자리를 폐하고 끌어내려가지고 엄마도 내쫓았습니다.(왕상 15장 13절) 그 정도까지 혈연 이런 것에 얽이지 아니하고, 오직 유일신 사상으로 승부 걸었던 사람이 [아사] 였습니다.

★아사의 실수(남북한의 문제를 이방인을 끌여들임)

-아마 어쩌면 쫓겨났던 사람들이 “니 신앙이 언제까지 가나 두고보자” 이랬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랫동안 살면서 아사 왕의 마지막 타락 때 “아이구.. 너도 별 수 없고, 인간이 깨끗하면 얼마까지 깨끗하겠냐! 너도 하나님 떠나니까 별거 아니구나..”너도 말년에는 하나님이 있어야할 그 자리에 금, 은이 와서 나중에 그거 더 좋아하고 남북한이 아무리 중간에 갈려져서 남한, 북한! 북쪽 이스라엘! 남쪽 유다! 이렇게 있다 해도, 어쨌든간 하나님의 백성들 아니냐! 나라가 갈라져서 왕이 서로 다르긴 해도 그건 솔로몬의 범죄함 때문에 나라가 갈라진 것 뿐이지.. 백성들은 다 하나님의 백성인데, 누가 남북한의 문제를 가지고 이방인 끌어들이래? 누가 북왕국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끼리 살면서 서로 간의 문제를 가지고 서로 해결을 해야지, 누가 북쪽에 벤하닷 끌어들여가지고 어떻게 너는 그 문을 줘가지고, 저 위에 있는 아람의 벤하닷에게 말을 해서 아벨벧마아가 거기를 무지막지하게 폭격을 가했더니 라마 건축하고 내려왔던 바아사가 깜짝 놀래서 건축재료를 다 놓고 올라가버렸습니다. (왕상 15장 16-21절)

-그런 모든 것들을 성경적이나 신앙적인 모습으로 보면, 굉장히 실수를 한 것입니다 아사왕이 그래서는 안됐습니다. 지금까지 기도로도 승리를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북쪽 이스라엘 왕들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기 때문에 어쩌면 말씀으로 승부를 걸어서 판문점 같은데 가서 서로 말씀 찾아가면서 이러고 갔으면 훨씬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남북한의 문제에 이방인을 끌어들여서 문제 해결하려고 했고, 그 문제 해결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없는 공권력이 투입해서 은금으로 매수된 벤하닷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내쫓아준 그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드라마에 관해>
-오늘 날짜에 드라마 할 팀에 제비뽑아서 나올 것인데 생각을 해보니 드라마가 처음에는 이사람이 착했었는데, 끝에는 이래가지고 죽었대. 그러면 너무 슬픕니다. 그래서 차라리 벤하닷을 끌어들인 거기부터 연출을 해가지고 점점 추락하는 거죠. 아사가 믿음이 추락하고, 은혜가 추락해서, 그래서 선지자 하나니를 갖다 가둬버리고, 백성들 학대하고! 백성들이 학대를 받으면서 여기저기서 욕을 막 하겠죠. “옛날에 아사 왕이였을 때는 앗싸 이러면서 좋았는데.. 이게 뭐하는 거냐”고 욕을 할텐데,  그렇게 욕하다가 어느 노인내가 나와서 “아사 왕이 지금처럼 나쁘게만 했던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면 손주들이“어?정말요?아사왕이 괜찮은 적도 있었어요?” “그럼! 그럼! 그 초기에는 말이야..” 하면서 초기 집권할 때, 도덕적 타락의 극치였던 남색하는 자를 몰아내는 노력, 아세라 목상을 찍어서 불사르고, 주상은 돌이니까 깨뜨리고, 어머니 자리를 폐하고 끌어내리고, 이렇게 해서 종교적인 열심을 보인 모습이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려고 몸부림 했던 거나, 기도로써 세라의 백만 대군을 몰아냈던 이야기들을 학대받는 백성들 중에 누군가가 꺼내면 “정말 그렇게 좋은 왕이였어요?” 과거를 떠올리면서“지금은 이 왕이 학대를 하고 발 병이 들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저러고 잇지만, 그에게도 참 좋았던 신앙의 한 때가 있으니 우리는 그런 좋은 모습을 기억하면 돼요. 그런 좋은 모습을 기억하고! 또 마음에 새기고, 또 닮고자 노력하면! 이 다음 때! 그 다음 때는, 점점 더 나은 자손들이 많아지지 않겠어? 내 마음가운데 죄성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배부르고, 등 따시고 먹고 살만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는 게 인간의 죄성인데,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면서부터 나라에 정치는 엉망이 되고, 하나님이 하늘에서 지혜를 공급하여주시지 않으시면 결과적으로는 망할 수 밖에 없지. 그런데 매회 악한 모습이 있었어도 그때마다 기도하는 백성이나, 기도하는 선지자가 있어서 하나님이 그 나라를 존속하게 하셨지.” 하면서 어떤 나레이터가 되어주는 한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과거로도 가서 과거 이야기도 들어보고, 그 이야기를 다 듣고나면 학대를 받으니까 아사 왕이 너무 밉고 저주하고 싶지만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백성인데도 불구하고 절대 갑인 아사 왕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 자기 자리, 인기 뺏어갈까봐 늘 불안했던 [사울]!

-다윗이라는 사람은 사울의 군대장관이였고, 본인은 사울에게 미움 받아서 쫓겨다녔지만, 그는 항상 사울왕을 불쌍하게 여겼습니다. 자기는 높지만, 뭐가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엇을까? 다른 거 없더라고요. 왕인데 누가 내 자리 뺏을까봐.. 내 인기 누가 가져갈까봐. 연세가 많이 드시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인기! 오직 내나라! 내 꺼!  내가 제일 높은 자리에 있어야하는데 어느 놈이 내 자리를 뺏어가려고 그래! 이렇게 하다보니 행복한 나날이 없는 것입니다. 너무 불안합니다.

VS

▶진짜 왕이신 하나님만 높인 [다윗]

-그런데 다윗은 어때요? 자격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께서 충성만 하면 지키시고 인도하시는데 무슨 염려가 있겟는가! “하나님! 하나님이 진짜 왕이십니다. 하나님이 제게 왕 자리를 주셨지만, 자리뿐이지요. 진짜 왕은 하나님이시잖아요.”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우리! 신앙 저버리지 맙시다! 지금보다 환경이 더 좋아져도 금은 사랑하지 않기! 권력! 세상! 명예! 사랑하지 않기! 하나님 몰라보는 눈깔을 뽑아버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하나님만 높이기! “주님! 영광받아주세요”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누가 옳았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탄압이 있고 어려워져고 그것이 와야 계시록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난척하고 잇네 그렇게 나라에 대해서 대든다고 뭐가 달라지냐?” 하겠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시잖아요. 매순간 뭐가 잘못되고 옳은지 판결하는 곳에도 악이 있다고 말씀 하셨기 때문에 분명히 법조인들이 다 옳지 않고, 정치인들이 다 옳은게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시점에서 백성이 나랏님들 보다 올바를 수 있고 감옥에 갇혀있는 분들이 판검사보다 더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사람일 확률도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정말 그 사람이 옳았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길은 사람보기에는 옳아보여도  필경은, 사망이라고 이야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으로 다 판단할수 없지만, 그러니깐 성경을 주셨잖아요. 이 말씀대로 살면, 선한 길 갈 수 있고, 그러면 구원의 길로 간다고!! 

[잠언 16장 25절]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당시에는 맞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의 길을 간사람인지, 현실의 길을 간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꾸만 일제때 이야기를 합니다만, 당시에는 일본이 갑이니까 일본한테 잘보여서 목숨 부지하는 게 그게 그 당시로써는 최선이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고 지금 벌써 70년 정도나 이렇게 되었는데, 올해가 광복 70주년이 되었습니다.. 지금 난리가 났더라구요. 박근혜는 재벌들을 대통령 특사로 풀어줄건가. 나라가 엉망진창이고, 돈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한데, 나오기만 하면 돈을 어마어마하게 풀만한 사람이 10명정도 들어있다고 합니다. 걔네들을 빼서 스폰을 받을 거냐! 아니면 없이 살아도 자신의 신조대로 갈꺼냐! 그러고선, 참 불편할 것입니다. 대통령이 미움을 받고 사랑을 못받다 보니까, 그 사람이 뭐를 해도 욕을 먹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은 무엇을 해도 욕을 먹는다 보다는, 이런 것입니다. 여기는 특사로 풀려놔 주어서 좀 경제를 살려주는 쪽이라고 하면, 안풀어준다고 하면 반대편에서 욕을 할 거고, ‘절대로 소신껏 가야지’ 하는 이런 분들은 대통령 특사로 풀어주면 안되는 재벌들 풀어줄 때 여기서 난리를 부릴 것입니다. 대한민국 네티즌들이 신기하다.. 어떨 때는 감동을 받아서 너무너무 사람을 칭찬하다가.. 또 어떨 때는 사람을 죽일듯이 달려들고, 다 다른 사람이에요. 칭찬하는 사람은 항상 칭찬하고요. 욕하는 사람은 항상 욕해요. 이번에도 어떻게 될지 잘 알 수 없지만,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본인이 그런 소신들을 알려왔었기 때문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그것이 당시에 조류에 의해서 맞는 것 같아 보였어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역사의 길을 간 사람들은 존경받게 되어있고, 현실의 길을 간 사람들은 별로 닮고 싶지않은 사람들로 전략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재산 지키겠다고 현실의 길을 가고,  정신적이고 올바른 길을 가겠다고 자신의 잇는 것을 다 빼앗기면서도 역사의길을 갔던 분들이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역사의 길을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왕상 15장 12절-13]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하고, 또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왜 산당은 없이하지 않았나!? = 확실히 여호와하나님만을 섬기는지, 다른 신을 섬기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왕상 15장 14절]
‘오직 산당은 없이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왕들마다 종교개혁을 어마어마하게 강행 했는데 그런데 산당은, 다 없이하지 않았다. 우리 생각에 산당은 다 나쁜 거니까 “왜 산당을 못 없애고 있는거야?”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역사 기록들을 보면, 조금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남쪽같은 경우에는 예루살렘. 북쪽같은 경우에는 사마리아.  여로보암 같은 경우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만들어서 이게 하나님이라고 뻥까고 이러면서, 밑에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펴면서 모든 명절 절기 다 못지키게 하고, 분열 왕국에 초대 왕이였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8월 15일 딱 하루만 절기로 하자. 그래놓고 금송아지를 섬기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보암이 뭔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냐 그러면, 레위인이 아닌 일반인들 제사장 삼았고, 그리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쌓아놓고, 저 위쪽에 잇는 놈들은 단쪽에 가서 금송아지 한테 절하고 섬겨라. 그러고 아닌 쪽에 있는 사람들은 유다 땅하고 북쪽에 경계지역에 벧엘 있는 곳에 금송아지를 놓고, “이게 하나님이니까 이것을 섬기라” 이렇게 해버린 것입니다. 우리같으면 말같지 않은 소리를 듣겠냐마는, 너무 신기한게 그 소리를 듣고, 금송아지를 섬깁니다. ex)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있을 때도 금송아지 섬기는 것을 봐요. 사람들이 한 곳에 빠지고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주신, 예배에 대한 목마름과 어떤 무엇인가를 예배해야되고, 숭상해야되는 그런 섬김의 워십 파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뭐라도 섬겨야합니다. 너무 신기한게 예배 안 오는 사람은 그날 노는게 아닙니다. 스포츠를 예배하고, 골프를 예배하고, 여행을 예배하고, 그 남자 그 여자를 예배하고, 뭐든지 뭔가를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피조물이기 때문에 뭔가를 섬기게끔 만드셨는데 더듬어 찾아가지고 그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찾은 사람은 완전, 장땡! 완전 복 받은 거고! 아직까지도 우리 하나님을 못 만난 분들은 지금도 돌아다니면서 산신령 섬기고, 바다에 용암신 섬기고, 별짓 다하면서 구원의 길과는 멀어지고 있습니다. 저와여러분은 구원의 길을 만났으니 구원의 길을 전합시다!!

-가정마다 집집마다 재단이 있다. 가정재단을 섬기는데 어떤 사람은 예배하고, 어떤 사람들은 미사를 하고 하면서 자기네 섬기는대로 합니다. 모든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모든 왕들을 보앗을때 저 산당에서 뭐를 섬기는 지를 확실히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은, 가는데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하나님”을 부르면 그게 하나님을 부르는 제단이지만, 아세라를 놓고, “아세라 신이시여” 그러면 그게 또 아세라 상이 되고, 바알 주상을 올려놓고 바알을 섬기다가 “여호와하나님” 이럴 수도 있어서 그게 대부분 여호와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재단인지, 산당이라고 했는데 자기 집앞이 아니라 산위에 올라가서도 단을 쌓잖아요. 근데 자기네 집이 멀어가지고, 예루살렘까지 갈만한 상황은 안되고, 또 하나님을 만나야 될 일들이 있으면 각자 본인들이 있는 위치에서 하나님을 찾앗을 거 아니에요. 엘리야가 불을 받기 전에 먼저 햇던 것이 무너진 재단을 수축한 것처럼, 뭔가를 제단을 쌓으면 쌓은 제단이 하나님만을 부르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신을 부르는 것인지 사실은 알도리가 별로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오천만인데, 한명의 왕이 돌아다니면서 “야 너 이재단에서 누구 섬기는거야?” 그러면 분명히 다른 거 섬긴다면 다 무너뜨리고 갈 줄 아는데 사실은 솔직하게 이야기해 줄 자가 얼마나 있었을까 저도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눈에 보이는 공식적인 우상 다 때려부수고, 불사르고 별거 다하면서도 왜 산당에 있는 것들은 다 없애지 못했을까에 대한 의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의문들 속에 여호와하나님을 부르는 여호와의 제단도 있고, 단을 쌓아서 “여호와하나님” 부르는 제단도 중간 중간에는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 없이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것과 비슷한 것같습니다. 사람은 그걸 다 찾을 수 없고, 왕도 찾을 수 없고, 거짓말하려고 달려들면 그거 속게 되어 잇습니다.

▶쭉정이도 추수 때까지 그냥 두라고 하신 예수님!
 
-예수님도 가라지와 알곡 있는데서, “가라지 왜 났어요?” “악한 자가 와서 뿌렸구나..” “그럼 이거 다 뽑아버릴까요?” 그랫더니 “추수 때까지 그냥 두어라.” 추수 때까지 아무것도 없는 쭉정이도 같이 영양분 먹으면서 크는 것입니다. 그 안에 쌀 한톨도 안들어잇으면서 그냥 막 키가 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추수 때 그것들을 한꺼번에 싸그리 몽땅 베어다가 불쏘개로 아궁이에 쳐 넣을라니까 지금은 냅둬”그랬습니다.

-모든 왕들이 다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산당가운데 어느 게 단을 쌓고 여호와를 불렀을지 아니면 이상한 산신령을 불렀을지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아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가 죽어서 신후사를 알자가 없는데, 그가 죽어서 지옥을 갈지 하나님 나라 가게 될지 우린 알 수 없습니다. 당시에 그가 하는 일이 옳아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에 필경 망하는 길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급하게 다 단언할 수 없지만, 무너진 재단을 수축하고 여호와하나님을 부르면 삽니다. 누가 와서 때려 부수지 않아도, 내 집안에 있는 우상은 내가 때려부셔야합니다. 주님! 하나님 싫어하시는 것 부숴버릴 용기를 주세요. 시간이 지나면서 저희들은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우상숭배는 크게 없지만 정신적인 것들이 되게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것을 하찮게 여기는 것!

★나만 옳다 주장하고, 하나님이 상대방 편을 들면 내가 악인이 될수 있습니다.

EX) 제가 어떤 사람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무 머리 속이 복잡해서 머리를 비우고 싶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지워버리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하길래.. “다 지우면 안되지. 부분적으로 지워야지. 나정도면 괜찮지. 이정도면 됐지. 돈이 능력이지. 성령버는 일이 하찮지. 성령버는 일이 하찮아보이는 거. 돈이 능력으로 보이는거. 이정도면 됐다고 하는 착각. 나정도면 괜찮지 자화자찬하는 것. 이런 걸 지워라. 하나님은 하나님 방법 쫓지 않는 자 원수되시니까.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 편이니까. 기도하는 사람들과 원수 맺지 말고, 내가 그자보다 더 많이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면 내가 옳다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이 상대방 편을 들면 나는 하루 아침에 졸지에,, 악인이 될수도 있다.”

★기도하고 나아가 세라의 백만 대군을 쫓아낸 아사!

-아사가 백만 대군을 쫓아내고 몰아내는 그 전쟁에서 그냥 쫓아낸게 아니라 쫓아가서 막 죽입니다. 기가 어디서 살아서 하나님이 힘도 주고, 능력도 주고, 하나님이 쫓아도 내주고 끄트머리에 빨리 못 도망간 애들, 발이 빨라서 빨리 도망간 애들은 아사헬처럼 발이 빨려서 도망가지만 꼭 늦는 애들이 있잖아요. 적국에도 꼭 늦는 애들이 있어 걔네들은 쳐맞는 것입니다. 끝까지 쫓아가서 구스 사람 군대를 쳐 부수고 그랬습니다. 사실은 그게 원래는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였는데 기도하고 나갔더니 가능해졌습니다. 사실은 구스 사람 세라의 군대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 그 사람들 편이 아니였기 때문에 이길 확률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쪽수로 볼때 본인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들어와서 막 교만 떨다가 망했습니다. 

-또 그 청년에게 그랬습니다. “너보다 기도 많이 한 사람은, 그사람이 혹시 지금 잘못된 판단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많이 만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고치실 것이다. 문제는 내 스스로가 옳다고 착각하면서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본인이 착각을 해도, 고쳐줄수가 없다. 그러니까 기도하는 사람들과 원수 맺지 말고, 가까이 지내고, 내가 옳다라고 주장하고 싶으면 하나님 내편으로 만들어야한다.”
 
▶ 링컨이야기-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면 된다.
 
Ex) 남북전쟁을 할 때 링컨 밑에 있는 사람들이 링컨은 본인이 남쪽 사람이니까 북쪽에 있는 많은 모카 농장에 있는 노예들을 해방을 시켜줘야하니까 전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막사에 흰 수건이 달려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러면 링컨이 기도하는 시간이라 아무리 가서 보고할 일이 있어도, 그 앞에서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면서 사람들이 같이 기도하고, 기다려줍니다. 그래서 이러고 있다가 내려오면, 회의시간에 되면 사람들이 “대통령님 이번에도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실까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시도록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면 된다.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면 승리한다.” 우리가 딴데 와서 동떨어져있으면서 하나님을 내편으로 끌어들기보다는 하나님은 항상 공의시니까 하나님 편으로 우리가 편입을 해서 같이 달려가면 정말 될만한 싸움! 이기는 싸움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온전했다=[코람데오] 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평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그 모든 산당들이 다 우상산당이라고 확실햇더라면 다 밀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14절에 보면은 산당을 없애지 못했고 그 뒤에 보면 일평생 여호와보시기에 온전했다고 합니다. 그 산당들이 여호와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산당일수도 있기 때문에.. 어쨌든 하나님 앞에서 [온전했다] 고 합니다. 이 온전은, 코람데오! 하나님 카메라 앞에서 내가 생활하는 것. 그런데 어떻게 아무데서나 막 이상한 짓을 할 수 있겠어요? 어디를 가도, 카메라가 사방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으면 되게 편해요? 아닙니다. 엘리베이터 멈출때까지 아무것도 안합니다. 등허리 가려워도 못긁습니다. 아사는 평생 젊은 날 동안은 그렇게 살았대요.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 하나님 카메라가 나만 비추고 계신다. 그런데 그것을 답답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니 내 위험한 상황, 어려운 상황을 다 아시지.” “여호와하나님! 저 보고 계시죠? 저좀 도와주세요. 여호와하나님! 강자와 약자사이에 도우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어요! 저좀 도와주세요.” 내내 이렇게 사니까 내내 평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잘나가고 나가서 전쟁하면 이기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아사 건들이면 안되겠다. 하나님이 쟤 편이라서 쟤가 하나님 편에 있으니까 뭐든지 잘돼. 그러는 동안은 괜찮았습니다. 그뒤에 바아사 사건이 오기는 하지만.. 오늘은 좋았던 때만 보고 있습니다. 너무 세상에 슬픈 일이 많기 때문에 끝으로 갈수록 슬프니까.. 좋았던 점 그때 부분을 캡쳐! 새기기! 코팅하기! 스캔하기! 하나님! 하나님 밖에 모르는 아사의 젊은 날의 신앙을 내게도 주시옵소서!

★구별하여 하나님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15장 15절]
‘저가 그 부친의 구별한 것과 자기의 구별한 것을 여호와의 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기명들이더라’

-‘구별했다’라는 것은 거룩 입니다. 나한테 있는 금, 백달란트 이게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 꺼! 이건 내가 쓸꺼, 이건 국가적으로 쓸꺼 나눠가지고 하나님께 드릴 것들을 아까워하지 않고 싸그리 몽땅 다 하나님 전에 드렸습니다. 나중에 이것을 아람 왕 벤하닷한테 줘버리는 이런 일들도 있지만, 그 이야기는 그 다음에 사건이고, 우리는 그 사람의 좋았던 때를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 그 신앙이 우리에게 입혀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저가 그 부친의 구별한 것과 자기의 구별한 것을 여호와 전에 받들여 드렸습니다. 그냥 던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한테 “옛다” 이렇게 던진게 아니라 받들여서 드리고, 금, 은으로 만든 그릇들 싹 올려드렸습니다.

<<아사가 행한 선한 일 정리>>

-도덕적으로 개혁했지, 동성연애자 내쫓았지, 영적으로 개혁하면서 엄마 내쫓았지, 우상 불 살르고 없애버렸지, 하나님 중심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살았지. 남들은 다 은금 좋아서 세상으로 나갈 때, 본인은 있는 은금도 하나님께 드렸지, 하나님 중심사상 승리! 주님! 이 사상과 이 은혜와 이 믿음을 내게도 입혀주시옵소서!
아사의 뜨거웠던 젊은 날의 신앙을 입혀주시옵소서! 유지시켜주세요!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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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낮예배 1차 타이틀기도>>

여호와 하나님~!
말씀붙들고 기도할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아사왕 모친'마아가'의 태후의 위를 패했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아세라를 섬긴 우상숭배자 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엄마라도 우상숭배는 용납될 수 옶는 범죄이기에 태후의 자리를 폐하고 끌어내렸습니다. 아사 왕은 혈연의 정에 이끌리지 않았습니다. 혈연의 정애문에 공정한 개역을 하지 못했던 세상의 왕들과도 달랐습니다. 어머니의 위를 폐하기도 하고, 전에 있던 우상을 부숴버리고, 하나님께 대한 유일신 사상으로 그의 마음을 온전히 했습니다.

일평생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행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평안함을 주셨답니다.

여호와 하나님~! 주를 위하여 아낌없이 몸과 마음과 기도를 올려드린 아사 왕이 믿음이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행복하고, 평안한 때를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 이 죄인도! 아사 왕의 젊은 시절 처럼 살겠다고 결단하게 도와주세요!

신앙의 개혁을 일으키는 결단!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다는 결단!
헌신하는 몸이 되겠다는 결단!

하나님을 경외하고 평생 주님의 기쁨이 되겠다는 결단을 올려드리는 주의 종 되게 해주세요!

[열왕기상 15:11~15]
라임순서 바꿔봅니다.

(스타카토-한박자-슬러-평서]
11.“아사가 그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2."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 하고"
13."또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14."오직 산당은 없이 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15."저가 그 부친의 구별한 것과 자기의 구별한 것을 여호와의 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기명들이더라”
�� (고음) 어려워 낙심 될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때 주 너를 지키리~
후렴:주너를 지키리 아무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후렴1회더)

2015년 7월 3일 금요일

2015.07.02.목요수업1.임낙풍목사님

2015.07.02.목요일수업1.임낙풍목사님.

*본문 : 요한복음 4장 34-36절

-열매는 삶의 흔적입니다. 열매는 내 삶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열매는, 좋은 삶을 나타낼 것이고, 좋지 않는 열매는 좋지 않는 삶으로 나타낼 것입니다.

-그들이 나를 보고 나를 알고, 내 인생을 본 사람들이 “당신은 그래도 잘살았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잇어야하는데 만일 그렇지 않고 한사람이라도 “당신은 잘못살았소.” 만일 한 사람이라도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인생은 무엇인가 라고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내아들의 수술 흔적을 온천을 하며 살펴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마지막절 ‘나는 더 이상 괴롭게 하지말라. 나는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바울이 말한 예수의 흔적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해주는 하나의 고백이 아닌가. 그렇다고 한다면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삶에 내 인생에 예수의 흔적을 가져야하는데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져야합니다.

-골로새서 4장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의 채우라 그런데 여기서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합니다. 내 마음의 흔적을 가졌다고 하지 않고, 내 몸에 흔적을 가졌노라. 내 생각, 마음에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웠다고 하는데, 마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보여집니까? 안 보여집니다. 즉, 육체라는 것은 내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삶속에 채운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몸이라는 것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생활이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는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생활이 신앙이 되어야하고 신앙이 생활이 되어야합니다. 말씀의 생활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로고스! 예수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고, 육신이 말씀입니다. 그의 삶의 동작과 흔적은 말씀입니다. 말씀의 생활화. 기도의 생활화. 우리의 모든 믿음과 기도가 생활화 되지 아니하고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이것을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신앙은 말로하지 않고 동작에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말씀이 내 생활, 내 동작을 통해서 나타나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보고 하는 말이 “말쟁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주일학교 때는 우리보고 “예수쟁이”라고 했습니다. 쟁이는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크리스천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쟁이라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굉장히 그리워지는 용어입니다. 지금은 쟁이라는 말이 우리를 경멸이 여기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좋은 용어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배우는 것을 내 생활 속에 활용할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의 말 하나 동작 하나하나 “저사람 우리와는 좀 다르다”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Ex) 미국에 조나단 에드워드 라는 사람이 하나님앞에 “하나님이여 내 눈에 영원한 세계의 인을 쳐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세상에 모든 영화가 내 눈에는 희미하게 보이게 될것이며 하늘나라에 진리 안에서는 더 밝게 보여지게 될 것입니다” 성령으로 바르게 산 사람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행했던 사람들입니다. 즉, 몸으로 행동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어디에서든지! 복음이 되어야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된소식. 기쁜소식. 굿뉴스. 내 가족에게 굿뉴스가 되어져야합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어디서든 복음이 되어야합니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이고, 영생입니다. 가정에서도 내가 복음이 되고 직장에서도 내가 복음이 되고 교회에서도 내가 복음이 되어야합니다. 복음은 생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이 되지 않고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자녀들 식구들이 찌푸립니다. 굿 뉴스가 아닙니다. 왜 그럴까 성경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은데...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배웠지만, 성령의 열매는 그렇지 않은데 난 왜이럴까.. 이제는 우리가 몸으로 생활할 때입니다. 이제는 입으로 할 때가 아니고 우리의 생활이 복음이 되어질때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하는 내 삶의 흔적이 나타나야합니다. 

**성령의 아홉가지의 열매가 내 삶에 흔적을 만들어내야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이외의 열매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 영생에 이르는 열매

-요한복음 4장 36절 영생에 이르는 열매라고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영적일군이 구체적으로 해야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로부터 부름받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내 생활로 구체적으로 해야할 일을 말해줍니다. 즉, 썩어질 육신의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히 있을 영생을 위한 사역.

-이 말씀의 전제가 예수님께서 34절부터 내가 세상에 온 목적에 대해서 예수님이 먼저 밝히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이라고 했습니다. 양식은 삶입니다. 다시 말해서 양식은 내 가 살아가는 삶의 동력이 되어지는, 즉 생명입니다. 내 양식은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서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나 보내신 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왜 태어났습니까? 내 존재감.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고백한대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따릅니다. 내 인생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인생을 살아드려야하는데.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가 주신인생을 살기위해서 십자가를 집니다” 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내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세요? 아버지의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인생을 살아드려야하는데, 전복적인 예수님처럼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목적. 삶의 현실, 내가 십자가를 져야하는 일 이것은 아버지의 뜻이다. 내 인생은 없다. 아버지의 인생을 살아드려야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인생을 살아드렸습니다. 예수의 메시지도 아버지가 주신 메시지만 하셨습니다. 사랑, 믿음, 소망 어떤 것도 그는 아버지가 주신 것만 하지 아버지가 주시지 않은 것은 안하셧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인생을 살아드린다. 바로 인류구원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들을 부르신 목적과 의미가 어디있을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를 때 “제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 네 인생을 살지 말고 내 인생을 살아다오” 하면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들도 주님께서 만세전에 택하고 믿음의 자녀로 택하신 이유가 뭘까? “이제는 네 인생을 살지 말고 내 인생을 살아 달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본입니다. 내 인생을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 요한복음 4장에서 영생을 위한 사역! 썩어질 것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영생을 위하여 살아라 이것이 하나님의 인생을 살아드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진정한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았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일을 끝나야 삯을 받는데, 이미 너희가 삯을 받앗다고 하십니다. 본문에서 추수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삯을 받았다는 것은, A. 추수가 급해졌다는 것. B. 영생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이미 삯이 지불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혼구원을 위해서 사역하는 이는 이미 삯이 지불되었다. 그리고 면류관 받는 그것은 사후의 일이고, 이 땅에서는 주님의 인생을 살아드리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는 열매 즉 구원을 받는 사람들의 모든 기쁨.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향하여서 너희는 나의 기쁨이다. 주님의 인생을 살아드리는 사람에게는 영생과 기쁨의 삯이 이미 지불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영생을 위한 사역이 영혼구원인데 영혼구원이라는 사역은 내 인생을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생, 즉 주님의 인생을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삼년 동안의 공생애는 오직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인생을 살아드린 삶입니다.

=[영생에 이르는 열매]는, 내 인생을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인생을 살아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살 것인가?  주님의 인생을 살 것인가? 한 가지만 선택해야합니다 내 인생을 살면 내 육신은 편할지 모릅니다. 주님의 인생을 살면, 내 육신의 제약이 따를 것이고 많은 피해, 손해가 올 것이고 많은 어려움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나 제자들이 살아간 삶은, 주님의 인생을 살아가는 삶이였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순교까지 산 것은 주님의 인생을 살아드리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 자기의 생명까지 포기한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인생을 살아드리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못박히셨습니다. 주님의 인생을 살아드리려고 하면 많은 손해, 어려움,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영생입니다..

2. 빛의 열매

[에베소서 5장 9절]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빛의 열매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행실을 의미합니다. 행함. 곧 삶을 의미합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은 너희들이 빛 안에 있다고 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빛은 예수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빛의 열매는 예수그리스도의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행실입니다.

A. 착함 (아가도쉬네:일반적인 도덕적인 선)
B. 의로움(디카이오쉬네:도덕적인 악을 버림. 정직과 성실)
C. 진실(알라데이아:허위와 거짓의 반대인 도덕적인 진실)

= 이 세가지는 바로 빛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공유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어두움의 열매와 대조되는 속성입니다.

<어두움의 열매>

[에베소서 4장 25-29]

-너희가 빛 가운데 있다면서 어두움의 일을 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요한은 말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허위, 거짓, 바리새인이라고 합니다. 정직과 성실, 도덕적인 착함, 도덕적인 진실

EX) 다윗
-다윗의 일생일대의 그가 저지른 죄 가운데 가장 씻을 수 없는 것은 [밧세바 사건]입니다. 다윗의 회개의 시가 여섯편 나오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51편입니다.

[시편 51편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이 정직과 성실, 진실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밧세바의 사건을 저지를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다윗은 내 속에 있는 정직함, 성실함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내가 밧세바의 사건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 회개하면서 그가 절실한 것이 “내게 정한 마음을 주시고 정직한 영을 회복시켜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정직한 영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또다시 밧세바의 사건과 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착함과 정직한 영을 상실하게 될 때의 다윗과 같이 밧세바의 사건을 저질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욕구하시는 삶은 [빛의 열매] 도덕적이고 정직하고 진실한 삶을 살게 될 때 “저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3. 의의 열매
[빌립보서 1장 9-11절]

-의의 열매는 성도들의 외면적 생활. 밖에 드러나는 것. 내 생활 현장을 말합니다. 의의 열매는 신앙의 결과에서 나타납니다. 성도들의 외면적인 생활은 성도들의 신앙의 결과. 야고보는 믿음이 있노라고 하고 행함이 없으면 죽음믿음이라. 우리의 내면적인 믿음, 사랑의 결과가 외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의 열매라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산출되어지는 열매입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의는 내 행위에 의가 아니라 [복음의 의]를 이야기합니다.

<복음의 의>

[빌립보 3장 9절]

4. 입술의 열매
[히브리서 13장 15절]

[베드로전서 2장 6절]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어떤 제사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히브리기자가 찬미의 제사가 바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우리의 입술의 열매라고 합니다.

[시편 54편 6절]

‘증거하다’ 이 말이 (호몰로게오) 라는 말인데 이 말은 고백한다. 찬양한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의 성호를 가르키는 단어입니다. 그 이름을 증거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선하심을 내 입으로 증거한다.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입으로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내 입술로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7장 19절]

[호세아 14장 2절]

-하나님의 실존.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을 증거하는 실천 행위를 가져라. 이것도 역시 생활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고백하고 찬양을 통해서 네 신앙을 사람들한테 고백해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장에 가서 보면, 찬송과 저주가 한입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입술은 어떻습니까? 왜 성도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성령 찬송만 미친듯이 부르고, 성령이 우리 안에 잇어야하는데 집에 가면 미움과 저주의 말이 왜 나올까요?

-다윗이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주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내 속에서 악한 말. 저주의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수꾼을 세워서 그 말이 나올려고 하면 막아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혹시 신경질 나고 혈기가 나서 악한 말이 나올려고 하면, “주여”하고 소리를 질러야합니다. 입술의 열매가 중요합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살립니다. 우리가 가까운 사람끼리 말 조심해야합니다. 언어 훈련이 절대 필요합니다. 어려서부터 말하는 훈련을 시켜야합니다. 악한 말이 나오면 상대방이 무안할 정도로 책망해야합니다. 그런 말하면 오히려 그 말을 들어줍니다. 우리의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5. 선한 열매

[야고보 3장 17절]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선한 열매, 착한열매를 말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의 특성은 8가지를 말합니다.

A. 성결(하그노테스:하나님의 말씀의 특성.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결함이 없는 상태. 어느것도 섞이지 아니한다)

[시편 12편 6절]

-잡금이 전혀섞이지 아니한 순금을 말합니다.

B. 화평(샬롬. 다른 사람을 존중해주는 속성. 온유를 겸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줄 때 갈등, 싸움을 만들지 않습니다.

C.관용(에피에이 케이아:도전이나 자신을 자극적인 은사로 흥분시켜서 싸움을 만들어낼 때에 화를 내지 아니하고 말려들지 아니하고, 너그럽게 이해하는 성품을 말한다)

-바다가 장마 지었을 때 모든 것을 수용해서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런 마음 넓은 마음 너그러운 마음. 포용하는 마음.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너희 마음을 넓히라고 했습니다.

D. 양순(유페이데스: 이것은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한 말씀이라고 받아들이는 순종을 이야기한다.)

단어로는, 어진 양 순한 순. 어진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양선과 같은 의미입니다. 즉, 순종하는 마음을 양순이라고 합니다.

E. 긍휼 (엘레오스:이것은 시기와 반대되어지는, 남의 비참한 형편을 자기의 형편같이 생각하고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는것)

-[선한 사마리아]이야기에서 이 긍휼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쌍히 여기면서도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기는 힘듭니다. 우리가 실제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것은 우리의 진실입니다.

Ex) 톨스토이와 거지.
-톨스토이가 길을 가는데 거리에서 동냥하는 거지를 만났습니다. 톨스토이가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봐도 그날따라 은전 한 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다가 돌아서서 그 형제의 손을 잡아주고 “내가 당신에게 은전을 주고 싶은데 주머니를 뒤져봐도 은전이 없습니다. 혹시 내가 당신을 다시 만나면 은전을 드리겠습니다”하고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 거지가 일어나면서 눈물로 주르르 흘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은전을 던져주었지만, 내 손을 잡아준 사람은 선생님 한분뿐입니다. 나는 오늘 많은 은전을 받은 것보다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은 내게 최상의 선물입니다. 일생을 잊어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눈물을 흘렀습니다. 자기가 지닌 긍휼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해 줄 수 있을 때에 이것이 긍휼입니다. 우리도 있으면 주지만 없으면 그냥 지나갑니다. 이것을 가슴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에게 내 가슴의 따뜻함을 전달하는 바로 이것을 가슴전달이라고 합니다.

F.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편벽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교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열매가 선한 열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심회복, 정직회복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