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3일 금요일

2015.07.02.목요수업1.임낙풍목사님

2015.07.02.목요일수업1.임낙풍목사님.

*본문 : 요한복음 4장 34-36절

-열매는 삶의 흔적입니다. 열매는 내 삶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열매는, 좋은 삶을 나타낼 것이고, 좋지 않는 열매는 좋지 않는 삶으로 나타낼 것입니다.

-그들이 나를 보고 나를 알고, 내 인생을 본 사람들이 “당신은 그래도 잘살았습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잇어야하는데 만일 그렇지 않고 한사람이라도 “당신은 잘못살았소.” 만일 한 사람이라도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인생은 무엇인가 라고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내아들의 수술 흔적을 온천을 하며 살펴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마지막절 ‘나는 더 이상 괴롭게 하지말라. 나는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바울이 말한 예수의 흔적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해주는 하나의 고백이 아닌가. 그렇다고 한다면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삶에 내 인생에 예수의 흔적을 가져야하는데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져야합니다.

-골로새서 4장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의 채우라 그런데 여기서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합니다. 내 마음의 흔적을 가졌다고 하지 않고, 내 몸에 흔적을 가졌노라. 내 생각, 마음에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웠다고 하는데, 마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보여집니까? 안 보여집니다. 즉, 육체라는 것은 내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삶속에 채운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몸이라는 것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생활이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는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생활이 신앙이 되어야하고 신앙이 생활이 되어야합니다. 말씀의 생활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로고스! 예수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고, 육신이 말씀입니다. 그의 삶의 동작과 흔적은 말씀입니다. 말씀의 생활화. 기도의 생활화. 우리의 모든 믿음과 기도가 생활화 되지 아니하고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이것을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신앙은 말로하지 않고 동작에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말씀이 내 생활, 내 동작을 통해서 나타나야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보고 하는 말이 “말쟁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주일학교 때는 우리보고 “예수쟁이”라고 했습니다. 쟁이는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크리스천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쟁이라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굉장히 그리워지는 용어입니다. 지금은 쟁이라는 말이 우리를 경멸이 여기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좋은 용어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배우는 것을 내 생활 속에 활용할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의 말 하나 동작 하나하나 “저사람 우리와는 좀 다르다”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Ex) 미국에 조나단 에드워드 라는 사람이 하나님앞에 “하나님이여 내 눈에 영원한 세계의 인을 쳐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세상에 모든 영화가 내 눈에는 희미하게 보이게 될것이며 하늘나라에 진리 안에서는 더 밝게 보여지게 될 것입니다” 성령으로 바르게 산 사람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행했던 사람들입니다. 즉, 몸으로 행동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어디에서든지! 복음이 되어야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된소식. 기쁜소식. 굿뉴스. 내 가족에게 굿뉴스가 되어져야합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어디서든 복음이 되어야합니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이고, 영생입니다. 가정에서도 내가 복음이 되고 직장에서도 내가 복음이 되고 교회에서도 내가 복음이 되어야합니다. 복음은 생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이 되지 않고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자녀들 식구들이 찌푸립니다. 굿 뉴스가 아닙니다. 왜 그럴까 성경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은데...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배웠지만, 성령의 열매는 그렇지 않은데 난 왜이럴까.. 이제는 우리가 몸으로 생활할 때입니다. 이제는 입으로 할 때가 아니고 우리의 생활이 복음이 되어질때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하는 내 삶의 흔적이 나타나야합니다. 

**성령의 아홉가지의 열매가 내 삶에 흔적을 만들어내야합니다.

*오늘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이외의 열매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 영생에 이르는 열매

-요한복음 4장 36절 영생에 이르는 열매라고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영적일군이 구체적으로 해야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로부터 부름받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내 생활로 구체적으로 해야할 일을 말해줍니다. 즉, 썩어질 육신의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히 있을 영생을 위한 사역.

-이 말씀의 전제가 예수님께서 34절부터 내가 세상에 온 목적에 대해서 예수님이 먼저 밝히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이라고 했습니다. 양식은 삶입니다. 다시 말해서 양식은 내 가 살아가는 삶의 동력이 되어지는, 즉 생명입니다. 내 양식은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서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나 보내신 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왜 태어났습니까? 내 존재감.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고백한대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따릅니다. 내 인생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인생을 살아드려야하는데.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버지가 주신인생을 살기위해서 십자가를 집니다” 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내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세요? 아버지의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인생을 살아드려야하는데, 전복적인 예수님처럼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목적. 삶의 현실, 내가 십자가를 져야하는 일 이것은 아버지의 뜻이다. 내 인생은 없다. 아버지의 인생을 살아드려야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인생을 살아드렸습니다. 예수의 메시지도 아버지가 주신 메시지만 하셨습니다. 사랑, 믿음, 소망 어떤 것도 그는 아버지가 주신 것만 하지 아버지가 주시지 않은 것은 안하셧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인생을 살아드린다. 바로 인류구원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들을 부르신 목적과 의미가 어디있을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를 때 “제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 네 인생을 살지 말고 내 인생을 살아다오” 하면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들도 주님께서 만세전에 택하고 믿음의 자녀로 택하신 이유가 뭘까? “이제는 네 인생을 살지 말고 내 인생을 살아 달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본입니다. 내 인생을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 요한복음 4장에서 영생을 위한 사역! 썩어질 것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영생을 위하여 살아라 이것이 하나님의 인생을 살아드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진정한 삶의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았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일을 끝나야 삯을 받는데, 이미 너희가 삯을 받앗다고 하십니다. 본문에서 추수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삯을 받았다는 것은, A. 추수가 급해졌다는 것. B. 영생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이미 삯이 지불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혼구원을 위해서 사역하는 이는 이미 삯이 지불되었다. 그리고 면류관 받는 그것은 사후의 일이고, 이 땅에서는 주님의 인생을 살아드리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는 열매 즉 구원을 받는 사람들의 모든 기쁨.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향하여서 너희는 나의 기쁨이다. 주님의 인생을 살아드리는 사람에게는 영생과 기쁨의 삯이 이미 지불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영생을 위한 사역이 영혼구원인데 영혼구원이라는 사역은 내 인생을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생, 즉 주님의 인생을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삼년 동안의 공생애는 오직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인생을 살아드린 삶입니다.

=[영생에 이르는 열매]는, 내 인생을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인생을 살아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살 것인가?  주님의 인생을 살 것인가? 한 가지만 선택해야합니다 내 인생을 살면 내 육신은 편할지 모릅니다. 주님의 인생을 살면, 내 육신의 제약이 따를 것이고 많은 피해, 손해가 올 것이고 많은 어려움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나 제자들이 살아간 삶은, 주님의 인생을 살아가는 삶이였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순교까지 산 것은 주님의 인생을 살아드리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 자기의 생명까지 포기한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인생을 살아드리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못박히셨습니다. 주님의 인생을 살아드리려고 하면 많은 손해, 어려움,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영생입니다..

2. 빛의 열매

[에베소서 5장 9절]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빛의 열매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행실을 의미합니다. 행함. 곧 삶을 의미합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은 너희들이 빛 안에 있다고 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빛은 예수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빛의 열매는 예수그리스도의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행실입니다.

A. 착함 (아가도쉬네:일반적인 도덕적인 선)
B. 의로움(디카이오쉬네:도덕적인 악을 버림. 정직과 성실)
C. 진실(알라데이아:허위와 거짓의 반대인 도덕적인 진실)

= 이 세가지는 바로 빛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공유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어두움의 열매와 대조되는 속성입니다.

<어두움의 열매>

[에베소서 4장 25-29]

-너희가 빛 가운데 있다면서 어두움의 일을 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요한은 말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허위, 거짓, 바리새인이라고 합니다. 정직과 성실, 도덕적인 착함, 도덕적인 진실

EX) 다윗
-다윗의 일생일대의 그가 저지른 죄 가운데 가장 씻을 수 없는 것은 [밧세바 사건]입니다. 다윗의 회개의 시가 여섯편 나오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51편입니다.

[시편 51편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이 정직과 성실, 진실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밧세바의 사건을 저지를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다윗은 내 속에 있는 정직함, 성실함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내가 밧세바의 사건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다. 회개하면서 그가 절실한 것이 “내게 정한 마음을 주시고 정직한 영을 회복시켜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정직한 영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또다시 밧세바의 사건과 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착함과 정직한 영을 상실하게 될 때의 다윗과 같이 밧세바의 사건을 저질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욕구하시는 삶은 [빛의 열매] 도덕적이고 정직하고 진실한 삶을 살게 될 때 “저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3. 의의 열매
[빌립보서 1장 9-11절]

-의의 열매는 성도들의 외면적 생활. 밖에 드러나는 것. 내 생활 현장을 말합니다. 의의 열매는 신앙의 결과에서 나타납니다. 성도들의 외면적인 생활은 성도들의 신앙의 결과. 야고보는 믿음이 있노라고 하고 행함이 없으면 죽음믿음이라. 우리의 내면적인 믿음, 사랑의 결과가 외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의 열매라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산출되어지는 열매입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의는 내 행위에 의가 아니라 [복음의 의]를 이야기합니다.

<복음의 의>

[빌립보 3장 9절]

4. 입술의 열매
[히브리서 13장 15절]

[베드로전서 2장 6절]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어떤 제사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히브리기자가 찬미의 제사가 바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우리의 입술의 열매라고 합니다.

[시편 54편 6절]

‘증거하다’ 이 말이 (호몰로게오) 라는 말인데 이 말은 고백한다. 찬양한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의 성호를 가르키는 단어입니다. 그 이름을 증거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선하심을 내 입으로 증거한다.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입으로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내 입술로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7장 19절]

[호세아 14장 2절]

-하나님의 실존.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을 증거하는 실천 행위를 가져라. 이것도 역시 생활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고백하고 찬양을 통해서 네 신앙을 사람들한테 고백해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장에 가서 보면, 찬송과 저주가 한입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입술은 어떻습니까? 왜 성도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성령 찬송만 미친듯이 부르고, 성령이 우리 안에 잇어야하는데 집에 가면 미움과 저주의 말이 왜 나올까요?

-다윗이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주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내 속에서 악한 말. 저주의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수꾼을 세워서 그 말이 나올려고 하면 막아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혹시 신경질 나고 혈기가 나서 악한 말이 나올려고 하면, “주여”하고 소리를 질러야합니다. 입술의 열매가 중요합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살립니다. 우리가 가까운 사람끼리 말 조심해야합니다. 언어 훈련이 절대 필요합니다. 어려서부터 말하는 훈련을 시켜야합니다. 악한 말이 나오면 상대방이 무안할 정도로 책망해야합니다. 그런 말하면 오히려 그 말을 들어줍니다. 우리의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5. 선한 열매

[야고보 3장 17절]

-위로부터 난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선한 열매, 착한열매를 말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의 특성은 8가지를 말합니다.

A. 성결(하그노테스:하나님의 말씀의 특성.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결함이 없는 상태. 어느것도 섞이지 아니한다)

[시편 12편 6절]

-잡금이 전혀섞이지 아니한 순금을 말합니다.

B. 화평(샬롬. 다른 사람을 존중해주는 속성. 온유를 겸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줄 때 갈등, 싸움을 만들지 않습니다.

C.관용(에피에이 케이아:도전이나 자신을 자극적인 은사로 흥분시켜서 싸움을 만들어낼 때에 화를 내지 아니하고 말려들지 아니하고, 너그럽게 이해하는 성품을 말한다)

-바다가 장마 지었을 때 모든 것을 수용해서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런 마음 넓은 마음 너그러운 마음. 포용하는 마음.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너희 마음을 넓히라고 했습니다.

D. 양순(유페이데스: 이것은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한 말씀이라고 받아들이는 순종을 이야기한다.)

단어로는, 어진 양 순한 순. 어진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양선과 같은 의미입니다. 즉, 순종하는 마음을 양순이라고 합니다.

E. 긍휼 (엘레오스:이것은 시기와 반대되어지는, 남의 비참한 형편을 자기의 형편같이 생각하고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는것)

-[선한 사마리아]이야기에서 이 긍휼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쌍히 여기면서도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기는 힘듭니다. 우리가 실제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것은 우리의 진실입니다.

Ex) 톨스토이와 거지.
-톨스토이가 길을 가는데 거리에서 동냥하는 거지를 만났습니다. 톨스토이가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봐도 그날따라 은전 한 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다가 돌아서서 그 형제의 손을 잡아주고 “내가 당신에게 은전을 주고 싶은데 주머니를 뒤져봐도 은전이 없습니다. 혹시 내가 당신을 다시 만나면 은전을 드리겠습니다”하고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 거지가 일어나면서 눈물로 주르르 흘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은전을 던져주었지만, 내 손을 잡아준 사람은 선생님 한분뿐입니다. 나는 오늘 많은 은전을 받은 것보다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은 내게 최상의 선물입니다. 일생을 잊어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눈물을 흘렀습니다. 자기가 지닌 긍휼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해 줄 수 있을 때에 이것이 긍휼입니다. 우리도 있으면 주지만 없으면 그냥 지나갑니다. 이것을 가슴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에게 내 가슴의 따뜻함을 전달하는 바로 이것을 가슴전달이라고 합니다.

F.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편벽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교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열매가 선한 열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심회복, 정직회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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